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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기록/기록

말레이시아 주재원 생활 정리 글

by Thimothy 2023. 7. 12.

16개월 간 주재원 근무를 정리하며..

 

저 이제 2년차 인데요..?

 당시 말레이시아 생산관리 팀장의 공석으로 대체 인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제안을 받은 분들은 개개인 사정 상 주재원 근무가 불가능하여 내가 담당자로 선정되었다. 나는 2년차로 업무 수준은 '주단위 생산계획 및 관리, 출하 프로세스 이해' 정도였다. 한 공장을 관리하기엔 많이 부족한 능력이란 생각이 들었다. 부랴부랴 생산관리 과장님들께 속성 과외를 받으며 하나라도 더 알기위한 시간을 보냈다. 아무리 그래도.. 한국 생산케파와 동일한 생산케파를 가진 공장을 내가 잘 운영할 수 있을까? 자신은 없었다.

 

그것만 문제인가, 해외 경험은 태국 3박 4일이 전부였으며 영어는 공부가 많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적합한 담당자가 아니었으며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제안을 수락한 계기는 배터리 산업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해외 경험이 필수이며, 능력의 한계에 도전해보고자 하는 마음 하나였다.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처음 상상한 말레이시아 공장과 생활 환경의 이미지는 낙후된 모습이었다. 하지만 공장과 숙소는 깔끔한 신축이었다. 솔직히 처음 보고 '와.. 좋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숙소는 지원금에 한해 이동이 가능했으며, 말레이시아는 Grab 어플을 통해 택시와 배달음식을 이용이 가능했다. 주위에는 많은 휴양지가 있어 주말에 놀러가기가 굉장히 좋은 위치이다. 첫인상은 굉장히 좋은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일은 어떨까?

 

 당시 말레이시아 생산관리 팀은 로컬 직원 5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들은 전반적인 출하 프로세스를 담당하고 있었다. 결국 나의 역할은 생산관리와 출하조율로 영업과 로컬 직원들을 이어주는 것이 주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정도면 해볼만 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곳에서 지내며 취미로는 헬스, 수영, 테니스(레슨), 골프, 우쿠렐레(레슨), 피아노(레슨), 보컬(레슨), 무에타이(레슨), 중국어(레슨), 클라이밍을 취미로 했다. 레슨은 비싼게 월 6만원 정도? 그래서 가능한건 모두 도전했다. 축구를 못해본게 아쉽다. 여행으로는 카타르(월드컵), 페낭, 코타키나발루, 싱가폴, 쿠알라룸푸르를 가봤다. 더 갔었어야 했는데... 이제는 가기엔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상무님 그게 무엇이죠..?

 2주 간 적응하며 여러 업무를 배우던 중 상무님께서 '3개월 생산계획을 작성해라'라고 하셨다. 당시 우리 회사는 사업계획과 생산계획을 통해 사업목표 달성을 계획했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이것이 어떤 일정과 프로세스를 갖고 진행이 되는지 알지 못했다. 상무님은 마치 '너 왜 그것도 모르니..?' 같은 표정이셨고, 난 '저 입사한지 1년 됐는데요..' 하는 답을 속으로 삼켰다. 결국 사업계획이 구성되는 요소를 하나하나 뜯어보고 시작했다. 조금씩 재미를 느낄 뻔 하던 중 알게 되었다. 나의 업무는 생산관리와 출하조율 뿐 아니라 생산기획, 부자재 관리, 회의자료 작성, 로컬 직원 관리 등 그 외 관리업무들이 추가로 해야한다는 것을... 해볼만 하다는 생각은 사망플레그 였던 것 같다.

 

 상무님은 궁금한게 있으시면 날 불렀다. 그리고 자료를 작성했다. 공장 내 정보들이 쌓이니 어느 팀 부장님도 궁금한게 있으시면 날 불렀다. 자료를 작성했다. 그 외 말레이시아 생산관련 모든 내용이 내게로 요청되어져 왔다. 자료를 작성했다. 일은 계속 쌓였으며, 처리하는 속도보다 쌓이는 속도가 빨랐다. 로컬 직원과의 소통과 업무 배분으로 일의 부담을 줄이고, 효율적으로 빠르게 업무를 하는 방법을 익히고자 노력했다. 

 

 시간이 지나며 일이 익숙해져갈 때 쯤 사람들이 요청하는 업무가 '왜'필요한지 저절로 알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이 흘러가는 프로세스가 익혀진 것 같았다. 사업목표 달성을 위해 월 생산은 얼마나 필요하며, 이 생산을 위해 구매가 준비해야 할 것, 영업이 달성해야 할 목표, 관리해야 할 비용, 생산관리 포인트, 목표 재고 관리를 위한 계획... 그리고 상무님이 이 이쯤이면 화낼 것 같다는 느낌까지.. 이러한 익숙함은 시야가 넓어짐을 의미하는 것 같다,

 

22년과 23년의 나는 무엇이 달라졌나?

 시아가 정말 많이 넓어졌음을 느꼈다. 아마 상무님을 따라 많은 경영진 회의를 참석한 덕분이라 생각된다. 그곳에서 경영진은 무슨 생각과 어떤 회의체를 가지는지 경험했기 때문이다. 업무를 할 때 나의 주관이 생겼으며, 요청받은 업무가 최종적으로 어떻게 사용될지 생각하며 대응한다.

 

 승진을 했다. 그리고 이 무렵 이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기존 업무에 신규로 개설된 부서들이 더 많은 자료와 업무를 요청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그들의 요청은 20년, 21년, 22년 자료이다. 지금은 23년도 인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대조군을 과거에 두고 증감을 보았을 때 그 사유를 확인하는 것은 타당해 보이지만,  숫자를 하나하나 정립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수율은 몇 %가 적정인가, 로스율은?, 경쟁사의 수치는? 이것을 통해 앞으로 목표로 해야하는 숫자는? 배터리 산업은 미래를 보는 산업이다. 미래에 대한 회의, 미래의 달성 목표 같은 회의체는 없었다. 공유된 방향성도 없었다. 구성원이 목표해야 하는 개인의 성장 목표 수준도 없었다. 이것이 회사를 떠나게 만든 이유가 된 것 같다.

 

 많은 성과를 달성했고, 성장을 직접 느꼈다. 이러한 성장은 내적으로도 단단함을 가져왔다. 지금의 나는 22년 말레이시아를 떠나왔을 때 보다 더 큰 도전을 앞두고 있다. 이 도전의 키워드는 '증명'으로 생각 중이다. 내가 달성한 성과와 성장이 진짜인가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퇴사를 하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 주었다. 고마움을 다 전달하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도 크다. 그렇지만 배터리 산업에 있는 이상 다시 만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들 성공하고 만족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여기에 나마 남겨본다.